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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 1:1-7)"
* 오늘 읽은 말씀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문장, 단어 혹은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본문에서 살펴 본 우리가 받은 것들 - 사도로 부르심, 택정함, 약속, 은혜, 사도의 직분, 하나님의 사랑하심, 성도로 부르심
본문에서 살펴 본 우리가 드릴 것들 - 없음.
* 위 내용이 인상 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나의(혹은 오늘날의) 상황에 비추어 생각해 봅시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의 교인들에게 편지를 시작하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편지의 특성상 보내는 이가 있고, 받는 이가 있습니다.
바울의 표현대로 보내는 이는 사도로 부름을 받은 자신이며, 받는 이는 성도로 부름 받은 이들입니다.
그런데 이 부르심과 함께 받은 것들이 참 많습니다. 약속, 은혜, 직분, 하나님의 사랑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받은 우리가 주님께 드릴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함을 편지 중반에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오늘 본문에는 없습니다.
이를 묵상하며, 부르심을 받은 그 목적, 즉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1절), '그의 이름을 위하여'(5절) 사는 것
그것 하나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은혜와 복을 누리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인 중에서 바울이 7절에서 기도한대로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마다할 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주시는 이유, 부르심의 목적은 기억하지 못하거나, 잊고 살거나 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오늘 로마서 묵상을 시작하며, 나를 성도로, 목사로, 남편으로, 아빠로 부르신 그 목적
'하나님의 복음'과 '그의 이름'을 위해 살 것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 위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을 기도문으로 바꾸어 봅시다.
하나님.
용서 받을 염치가 없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없으며, 사랑 받을 이유도 없는 저를 사랑하시어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의 복음과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인할 수 없기에, 그 전능하심과 선하심을 알기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구하지만,
정작 그 부르신 목적을 위하여 내 자신을 드리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는 저의 모습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오늘 로마서 묵상을 시작하며, 다시금 '부르심'에 대해서 말씀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부르시고 세워주신 그 목적대로 살아가는 삶의 하루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때로는 이를 잊고, 다른 것을 추구할 때, 성령님 책망하여 주시고, 돌이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오늘의 삶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하라고 하시나요?
- 부르심의 목적을 기억하며, 내가 감당하고 해야 할 일들을 GTD방식으로 정리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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