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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묵상

2012.03.03 5,000명을 먹이심

by 다정다감 주인장 2012.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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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막 6:35-44)"

* 오늘 읽은 말씀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문장, 단어 혹은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막 6:36-37)"
 제자들이 문제를 인식한 후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두 강구한 후에 주님을 찾았던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그러나 주님은 다른 방법을 이미 가지고 계셨다. 그러기에 우리가 할 일은 문제를 인식한 후 문제를 해결할 나름의 방법을 들고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 자체를 들고 주님을 찾는 것이다.

* 위 내용이 인상 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나의(혹은 오늘날의) 상황에 비추어 생각해 봅시다.
 제자들의 문제 인식(저들이 배가 고프다)은 옳았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저들로 하여금 사먹게 하자)은 옳지 못했다. 아니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저들 자신이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주님의 생각을 물어야 했다. "주님 저들이 배가 고픈데, 그리고 먹을 것이 없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말이다. 그래야 비로소 그들이 고백한 대로 주님이 주님 되시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이렇게 말했다. '주님! 먹을 것이 없으니, 저들로 하여금 먹을 것을 사 먹고 오게 하시지요!' 이것은 명령이나 다름 없다. 말만 주님이라고 했을 뿐, 자기들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결정했다. 물론 이런 결정을 내릴 만한 데는 충분히 납들할 만한 이유가 있다. 남자만 오천명이 되는 이 수많은 군중을 먹이기 위해서는 이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거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들이 주님이라고 고백했던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셨다. 그러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 그들의 생각은 여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상황은 이러하다.', '그러니 이렇게 하자.' 이러한 생각의 흐름은 믿지 않는 자들과 똑같다. 그러나 믿는 사람의 생각의 흐름은 달라야 한다. '상황은 이러하다' 이 다음에 '그러면 주님은 뭐라고 하실까?'가 되어야 한다. 

* 위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을 기도문으로 바꾸어 봅시다.
하나님.
언제나 자녀된 자들을 돌보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삶에서 만나는 여러가지 문제들 앞에서 그 해결방안을 스스로 찾지 않게 하소서.
주님께 문제 자체를 들고 가서, 주님이 말씀하시는데로 문제를 해결해 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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