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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묵상

2012.02.15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

by 다정다감 주인장 2012.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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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 4:11-19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요 4:11-19)"


* 오늘 읽은 말씀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문장, 단어 혹은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목마르지도 않고, 여기 물길으러 오지 않게 하옵소서. 물 길으러 오면,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시선과 뒷담화 그것이 너무나 싫었던 여인, 정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면, 그 물을 먹고 여기에 물길으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청한다. 그 때 주님은 갑자기 남편을 불러 오라 하신다. 왜?
우물가에 나오기가 정말 싫은 이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시작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남편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 위 내용이 인상 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내 상황에 비추어 생각해 봅시다.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죄'다.
'죄'를 다루지 않고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 이의는 절대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인이지만, 모든 사람이 이 죄로 말미암은 삶의 아픔과 고통의 무게가 동일하지는 않다.
어떤이는 분명한 죄인이지만, 비교적 고통 없이 아픔 없이 무난한게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이는 그 죄로 말미암은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아픔 속에 상처로 얼룩진 인생을 살아간다.
두 부류 모두 근원적인 '죄'의 문제가 해결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죄의 문제'를 스스로가 인식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을 깨닫는 그 "과정"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교회 혹은 먼저 된 자들이 그 "과정"을 곁에서 도울 때의 태도와 방법도 달라야 한다.
예수님은 이제 '하나님의 선물'을 요청하는 그 여인에게 '남편'의 문제를 다루신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여인이지만, 먼저 그 '죄의 문제'로 받는 결정적인 아픔과 상처인 '남편'문제를 먼저 만지신다.
예수님은 상처의 치유를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그 상처가 육적이건, 심적이건.
물론 예수님께서 행하신 가장 놀라운 일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을 때 결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의 문제만 속전속결로 해결하시고 승천하시지 않으셨다. 3년간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시고, 그 수많은 아픔과 상처를 만지셨다.
이 부분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교회 혹은 먼저된 자는 이 둘 어느 한쪽만 강조하는 쪽으로 치우치곤한다.
내 사역(?)을 돌아봐도 그렇다. 처음에는 상처의 치유 쪽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반대 쪽으로 치우쳤다.
그러나 이제 균형을 잡을 때가 된 것 같다.

* 위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을 기도문으로 바꾸어 봅시다.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채찍에 맞으심으로 인해 우리에게 나음을 허락하신 것,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해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누리게 하신 것에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정오에 우물가에 몰래 나온 사람'에서 
'마을로 뛰어들어가 내가 주를 만났노라고 사람들에게 소리치며 증언하는 사람'으로 바꾸시는 과정의 첫 시작이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 했던 결정적 이유인 '남편의 문제'를 다루시는 것이었음을 보았습니다.
물론 주님은 그 근본적 이유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십자가의 예수님이심도 압니다.
예수님의 이 두 모습을 다 닮은 사역자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제게는 그럴 자격도, 능력도 전혀 없습니다. 오직 제 안에 주님을 모시고, 주님만 드러나시게 살겠습니다.
주님이 행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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