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 3:14-21)
* 오늘 읽은 말씀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문장, 단어 혹은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8-19)"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그것이 이미 심판이다.
왜냐하면, 여전히 어둠 가운데서 자기의 악한 행위를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 위 내용이 인상 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내 상황에 비추어 생각해 봅시다.
어렸을 때,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예수님 믿어 천국 가는 사람이 부러웠다. 나도 세상에서 즐길 것들을 마음껏 거리낌이나 죄책감 없이 즐기다가 죽기 얼마 전에 회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혹여나 갑작스런 죽음으로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지옥에 가게 될것이 두려워서 이내 마음을 접기는 했다.
그러나 본문에서 예수님은 믿지 않고 사는 것이 이미 심판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믿고 사는 것이 이미 구원이니, 믿지 않고 사는 것이 이미 심판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죽음이 심판과 구원의 갈림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태어나기에, 정죄와 심판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구원이란, 그 정죄와 심판에서 건짐 받는 것이고.
이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겠다. 종종 세상에서 그래도 도덕적이고 공명하게 그리고 유명세를 누리며 사는,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보면, 행복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다.
구원을 모르고, 구원없이 사는 삶들은 어둠 가운데 있기에 자신의 존재 안에 해결되어야 할 더러운 죄의 문제를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된 나는 때로 빛으로 드러난 나의 추악함에 부끄럽고 괴롭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정결해지는 것이니 이것이 참행복임을 기억하자.
* 위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을 기도문으로 바꾸어 봅시다.
하나님.
어두움 가운데서 빛을 비추시고, 그 빛가운데로 건져주신 놀라운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여전한 저의 어두움에 비춰지는 빛으로 인해서 부끄러움과 부대낌으로 인한 괴로움이 있지만, 그것이 어둠가운데서 헛된 평안 속에 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임을 기억하겠습니다.
제 안의 추악함이 빛으로 드러나는 것들이 기쁨이 되는 복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오늘의 삶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하라고 하시나요?
- "오늘 이 자리에" 찬양 묵상.
- 성령님의 수사에 적극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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