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 김삼순(김선아 분)이 개명신청을 결심하게 된 한 사건을 회상하는 장면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학창시절 이름 때문에 상처 받아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택시기사가 왜 그리 서글프게 우냐고 묻자 삼순이는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아 속상해 그렇다고 답합니다. 그 때 택시기사 위로하기 위해 말하죠.
“이름이 도대체 어떻길래? 삼순이만 아니면 되지.”
그 때부터 삼순이는 ‘희진’으로 개명하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하게 되고요..
굳이 있어 보이게 김춘수 님의 시 ‘꽃’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위와 같이 삼순이의 예를 보면 이름이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여러 이름을 정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사람의 이름은 아니지만, 캠프의 이름, 교회 내 부서 및 사역의 이름 등, 그리고 그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도 나름 잘한다는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이름을 정해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건 자녀의 이름을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게는 두 딸이 있습니다. 큰 딸의 이름은 이루다, 작은 딸의 이름은 이수아입니다. 검색해 보면 꽤 많이 존재하는 이름이지만, 독특하기는 한 큰 딸의 이름을 기억하는 많은 분들이 지난 5월에 태어난 둘째 딸의 이름을 물으면 저는 “이수아로 지었어요, 모음돌림이에요”라고 답하곤 하지요.
첫째 이름을 지을 때에는 큰 고민이 없었습니다. 사실 저희 어머니께서 ‘딸은 이루다, 아들은 이루마’로 하자고 결혼 직후부터 강력하게 주장해 오셨고, 저희 부부는 딸의 이름에는 찬성, 아들의 이름에는 반대를 강력히 주장했었습니다. 다행히 첫째가 딸이어서, 어렵지 않게 이름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둘째도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때때로 우리 가족들 사이에는 종종 루다의 동생 이름에 대한 토론이 오갔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루리’를 강력 주장하셨고, 아버지는 둘째의 태명인 ‘기쁨’이도 참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희 부부는 둘 다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자매여도 각자의 삶이 있는데...’라며 돌림 쓰기를 지양하자고 합의했고, ‘기쁨’이라는 누구나 들어도 그 뜻을 알 수 있는 부담스러운 이름 때문에, 억지 웃음 지으며 살게 되면 어쩌나 하는 기우로 ‘기쁨’이라는 이름도 별로라고 아내나 저나 모두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나 저에게 별다른 대안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첫째는 이미 존재가 생기기도 전에, 사실 복덩이라는 태명이 지어지기도 전에 이름이 정해졌는데, 둘째는 태어나서도 한 동안 이름을 정하지 못했었습니다. 성경의 인물의 이름을 쓰고는 싶은데, 이름으로 부담을 주고는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타협점으로 성만 ‘이’로 바꾸어주자 생각하여 성경 인물들에 감히 성을 함부로 바꾸는 성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더를 바꾸어 이스더, 엘리사를 바꾸어 이리사, 호세아를 바꾸어 이세아, 그러다가 여호수아에 적용해보니 ‘이수아’라는 이름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어감도 좋고, 부담스럽게 성경적이지도 않고,(성경적인 것이 부담스럽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게다가 루다와 모음이 동일하다는 공통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 중이던 아내에게 전화하여 ‘이수아’가 어떻겠느냐고 물었고, 아내도 정말 좋다고 동의하여 ‘이수아’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아내는 여호수아를 읽으며 ‘정말 좋다’를 연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양가 부모님에게 통보 및 설득(이건 제 어머니에게만 해당)하기 시작했고, 역시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져 주셨습니다.
루다의 이름을 들으시는 분들은 한글 이름이라고 생각하십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또 틀리기도 합니다. 성과 함께 어울려 ‘이루다’라는 동사형 이름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라는 뜻의 한글이름이지만, 한자 문화권인 우리 나라에서 한자 이름도 있는 것이 좋겠다 싶어 한자도 붙여주었습니다. 새길 루(鏤)에 많을 다(多)입니다. 한 번 뿐인 인생에 많은 것을 배우고 새겼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이름입니다.
둘째 역시 이름이 먼저 정해지고, 한자 붙이기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빼어날 수(秀)에 아이 아(兒)는 너무 흔할 것 같은 겁니다. 그리고 언제나 아이로 남을 것도 아닌데. 그래서 고민하며 반복해서 찾아보던 중 언덕 아(阿)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秀자에는 ‘꽃 피다’라는 뜻도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죠. 이거다! 꽃피는 언덕! 그리스도의 꽃을 피우는, 높이 솟은 산이 아닌 오름직한 언덕. 이렇게 둘째의 수아의 이름에 한자도 붙여 주었습니다. 어떻게 잘 지은 이름들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름에 걸맞는 존재로 잘 양육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스스로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우리가 불러주는 그 이름에 너무 잘 어울린다는 것, 그리고 첫째의 경우 그 이름을 불러 줄 때마다 반응하며, 유아의 특징상 ‘나’라는 1인칭 대신 ‘루다’라는 3인칭 고유명사를 쓰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할 때마다, 부족한 아비가 그 이름에 부여한 의미에 저들의 삶이 이름으로 스스로 행복하고, 세상에 유익하며, 무엇보다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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