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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묵상

2012.03.31 바디매오가 고침 받음(마 20:29-34)

by 다정다감 주인장 2012.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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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9]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33]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마 10:29-34)"

 

* 오늘 읽은 말씀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문장, 단어 혹은 가르침은 무엇인가요?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나는 무리와 같지는 않은가? 간절함을 예의 없음으로 판단하고 매도하고 있지는 않은가? 

 

* 위 내용이 인상 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나의(혹은 오늘날의) 상황에 비추어 생각해 봅시다.

어제(2012.04.02/큐티가 늦어져서ㅠㅠ) 부산역광장에서 있었던 북한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기도회에 참석했다.
약 한 시간 정도 늦게 갔는데, 두 번ㅠ 스피치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두 번째 스피치를 맡은 사람은 탈북 여성 최초 박사라고 소개된 이애란 씨였다. 
그녀는 스피치 내내 거의 울다시피 북한 탈북자를 위한 관심과 기도, 후원을 요청하였다.
그 내용과 진정성에는 가슴 깊이 공감이 되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 도중 소위 진보인사라 불리는 사람들을 '디스'하는 듯한 발언이 있었다.
그리고 북한의 체제 유지를 돕고, 그들과 같은 방식의 대한민국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대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식의 발언은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내게 있어 굉장히 귀에 거슬리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논조에는 동의하고, 북한 탈북자들의 인권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였기에 마음을 다해 기도하려 했다.
그런데 기도가 잘 안 되었다. 이런 나의 모습에 놀랍기도 하고 부끄러웠다.
오늘 본문에서 무리는 예수님께 소리 지르며 불쌍히 여겨 달라는 두 명의 맹인에게 잠잠하라 한다.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면 "예의"를 이유로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의"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눈을 떠야 했다. 고통에서 벗어나야 했다.
지금 예수님이 지나가시고 나면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는 일이다. 
볼 수 없기에 '예의'있게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 나올 수도, 돌무화과 나무 위로 올라갈 수도 없었다. 
그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소리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그들의 간절함을 모른체 '잠잠하라'는 무리의 모습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고쳐주신 예수님과 참으로 대조적이다.
나는 과연 어느 쪽일까? 솔직히 전자이지 싶다. 주님의 마음이 내게 부어지기를...

 

 

* 위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을 기도문으로 바꾸어 봅시다.

하나님.
만유의 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보살피시는 은혜로 인해 감사를 드립니다.
그 사랑이 없었다면, 저는 결코 주님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 제가 그 사랑을 받았다면, 그 사랑으로 살아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합니다. 
저의 정치적인 성향이나, '예의' 등의 문제로 고통 받는 자, 지극히 작은 자의 그 간절함과 아픔을 깊이 이해하지 않은 채
그저 '잠잠하라'고 하는 무리와 같은 모습입니다. 
주님 이런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 대하여 주님의 마음으로 관심을 갖고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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