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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배/마틴 로이드 존스

십자가와 구원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이론들

by 다정다감 주인장 2011.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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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떻게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교회 역사 속에서 다양한 설명이 시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설명이 올바르지는 않습니다.

단편적으로 저는 그동안 십자가를 단순히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으로만 이해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신 그 사건과 그 의미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 그것만 생각한 저의 생각이 단순했습니다. 그러나 복음과 내 삶의 연관성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자리인 동시에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리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이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저는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하고, 예수께서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진리의 한쪽 면만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에 대한 단편적 이해는 복음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가게 하는 일에 걸림돌이 되어왔습니다.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가 곧 진리를 살아내는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진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진리의 삶을 살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십자가와 구원이라는 우리의 영혼의 영원을 좌우하는 중대한 진리는 더욱 그러합니다. 저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교리강좌 중에서 ‘속죄’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제가 가지고 있었던 ‘십자가와 구원의 관계’에 대한 이해 중에서 잘못된 개념들도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정리한 ‘십자가와 구원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설명을 정리하여, 그것들과 우리의 이해를 비교하여 늘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습니다. 다음의 내용은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강좌를 개인적으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에 대한 잘못된 이론 몇 가지를 역사적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속전설(ransom theory)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 중 일부는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포로로 잡힌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마귀에게 속전을 지불하셨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에 대해 지지하는 구절이 전혀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 11세기 말엽 켄터베리 대주교인 안셀무스가 잘못된 가르침을 전파했는데, 그 이론을 만족설(satisfaction theory) 혹은 상거래설(commercial theory)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이론에서 죄는 하나님을 모욕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예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님이 오셔서 자신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명예를 보상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에서는 주님은 그러실 필요가 없는데,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필요 이상의 행위를 하신 것이 됩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의 명예는 만족을 얻고, 하나님이 성자에게 그 죽음에 대한 보상을 하려 하지만, 성자는 보상을 백성에게 해 주기를 원하셨기에,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선물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의 가장 결정적 문제는 하나님의 손상된 명예만 이야기 할 뿐 하나님의 공의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리스도의 죽음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고 가르칩니다.

또 하나의 이론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론으로 흔히 도덕 감화설(moral influence theory)이라고 부릅니다. 이 이론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는데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용서는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고, 다만 그 용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 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지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기 위해 그리스도를 죽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론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공의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 편에서는 아무런 하실 일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중보자가 아니게 되고 맙니다.
 



또 다른 견해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단지 모범이었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주님이 오신 이유는 완벽한 삶을 살고, 완벽한 순종으로 죽으신 하나의 모델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주님처럼 살고, 주님처럼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에서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가 아니라 모방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되고 맙니다.

또 다른 이론은 통치설(government theory)이라고 지칭합니다. 본래 17세기 화란의 그로티우스가 제의한 이론으로 19세기의 유명한 설교가인 버밍햄 데일도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이론에서 하나님은 원하시면 율법도 바꿀 수 있었고, 그렇기에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을 용서하실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공의에 의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다만 이 세상의 도덕적 삶을 보존하기 위해서 죄에 대해 뭔가 과감한 조치가 필요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방법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론 역시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으며, 더욱이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율법을 철회하실 수 없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초 런던에서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이 유행시킨 신비론(mystical theory)도 있습니다. 어빙의 독창적은 견해는 아니지만, 그의 유창한 언변으로 인해 널리 소개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가졌던 인성이 죄 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성령의 능력으로 인성을 죄 없이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이 죽으실 때 죄를 인성으로부터 몰아내고, 하나님과 연합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성경 어디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기괴한 신비주의적 개념입니다.

마지막으로 20세기 초 큰 인기를 얻었던 속죄의 대리 회개의 개념(vicarious repentance idea of atonement)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이론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은 인류를 대신해 회개를 드리는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죄에 대해 참된 개념을 가질 수 없기에 참된 회개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는 죄가 없으시기에, 죄책감을 느끼신 일도 없습니다. 죄책감 없는 존재, 죄를 범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존재가 회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주님이 우리 대신 회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저 역시도 이 중의 몇몇 이론들처럼 십자가와 구원을 이해하고 있기도 했으며, 또 그렇게 가르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나 부끄러운지요. 그렇다면, 십자가와 구원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포스팅 하겠습니다.

십자가와 구원의 관계 - 대속(http://withlight.tistory.co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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