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보니 보였다.
너무 기대가 컸었나? 어떤 내용의 리뷰를 쓸 것인지를 생각하며 보아서 그랬을까? 2화를 보면서는 뭔가 아쉬움만 가득했었다. 쓸거리가 별로 없는 듯 느껴졌다. 김수정 산모의 태아가 잘못된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간이식을 두번이나 받았는데도 여전히 술을 먹는 그 아저씨도 싫었고, 실밥을 건드리기만 하면 아프다고 자지러지는 승원이는 정말 짜증스러웠다. 준완이가 힘든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기쁜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하려는데, 자기 힘든 이야기만 하던 익순도 얄미웠다. 채송화의 '전공의'에 대한 배려를 가지고 담임목사와 부목사와의 관계 정도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글을 시작하기가 싫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석형이 김수정 산모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유감을 표할 때 흘러나오던 BGM "바람이 부네요"가 자꾸 흥얼거려졌다. 특히나 석형이 이야기를 마치고 병실 문을 닫고, 그 문 유리창을 통해 슬퍼하는 김수정 산모의 모습이 보이는 그 순간 "산다는 건 신비한 축복"이라는 노랫말이 흘러나오던 그 장면. 그 기막현 연출이 자꾸 생각나며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두 번째 보다보니, 2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보였다.
당연하거 아니에요!
위에서 말한 그 명장면 다음 씬에서 익준은 김장우씨에게 더 이상 진료해줄 수 없으니 집근처 가까운 병원으로 가라고 이야기 한다. 이유는 이렇다. 김장우 환자는 3년전 술먹다 쓰러져 의식도 없을 때 큰 딸이 간을 기증해 주어 수술했는데, 회복 후 또 술을 먹어 결국 작년에 둘째 딸에게도 간 기증을 받았다. 그런데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다. 그 사실을 안 익준이 화를 힘겹게 억누르며 이렇게 말했다. "자식이 간 기증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네?!" 맞다. 그렇게 간 기증받는 것, 다시 살 기회를 얻은 것, 당연한 것 아니다. 어디 그 뿐일까? 우리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마찬가지다. 당연한 것 아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노래 하게 된다. "산다는 건 신비한 축복" 익숙함에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말도, 의미 없이 산 나의 오늘이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일이었다는 말도 우리가 누리는 일상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상기시켜주기 위함이 아닐까? 오늘날 지구촌을 사는 우리 모두가 '코로나'를 겪으며 지극히 자연스럽던 마스크 없는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있다. 그렇다. 당연해 보였던, 그것 당연한 것 아니었다. 신비한 축복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은혜'라고 고백한다.
당연하지 않다 생각할 때
실밥을 건드리기가 무섭게 아프다며 자지러지는 승원이를 얼르고 달래 봤지만, 결국 교수님(정원) 진만 빼고 다음주에 다시 병원에 와야 하는 승원엄마는 속상하다. 교수님께 죄송스럽고, 그것 하나 못참는 승원이가 걱정스럽기도 하고 밉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승원이는 암 수술도 이겨낸 아이다. 힘든 싸움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동안의 아픈 시간에 비하면 실밥 뽑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데, 별 것 아닌 그 일에 속상해했음을 정원과의 대화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산다는 것이 신비한 축복임을 망각할 때, 우리는 승원 엄마처럼 되곤 한다. 별 것 아닌 것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깊은 한 숨을 내쉬게 된다. 온갖 걱정을 미리 앞당겨 끌어 안고 씨름을 한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사실 승원 엄마가 겪은 그 날 그 일이 아무일도 아닌 건 아니다. 분명 속상한 일이고 버거운 것도 맞다. 정원도 그것을 공감해주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승원이가 이겨내 온 시간들을 말이다. 그러면 깊은 한숨의 원인이던 '실밥 뽑기'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게 된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것, 그것이 어떤 시간들을 통과해 누리는 것인지, 지금까지 어떤 도움과 은혜들이 있었는지 기억한다면,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그래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지'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러면 이 정도는 넉넉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너도 그렇다.
슬의생 시즌2 2화는 우리가 누리며 살아가는 인생의 무게를 일깨워 준다. 사는 게 신비한 축복임을, 누리는게 당연한 게 아님을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라고, 지나온 세월 이겨낸 시간들 떠올리며 지금의 어려움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다고 응원해준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의 인생이 그렇듯 너의, 그리고 그의 인생도 그렇다고 이야기 해준다.
전공의를 못미더워하며, 팔짱을 낀채 감사인사도 하지 않고, 담당 교수만 인정하는 보호자에게, 송화는 전공의들도 10년 공부한 실력자들이니, 환자에 대해서는 담당교수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으니 전공의들을 믿어달라 이야기 한다. 수술을 잘 마치고 나와서는 가족들에게 수술 잘 되었고, 봉합 등의 마무리는 전공의들이 잘 할 거라고 언급해준다. 송화가 수술한 환자가 유럽에서 활동 중인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유경진이었기에, 독일의 방송국에서 그녀를 수술한 한국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 송화를 인터뷰하고자 했다. 그런데 송화는 거절한다. 이유는 그녀와 함께 수술한 전공의들이 인터뷰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본인만 인터뷰할 수는 없다는 것. 자신과 똑같이 중요한 역할을 한 전공의들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유경진의 어머니와 사뭇 대조된다.
서론에서 언급한 준완과 익순(런던에서 유학 중)의 전화 통화에서 익순은 자신이 인종차별 당했음을 이야기 한다. 왠지 이 씬이 준완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신의 기분대로 행동하는 익순의 모습을 보여주며, 둘 사이의 이상기류가 생기기 시작한 복선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왜 하필 소재가 인종차별이었을까? OST '바람이 부네요'의 가사처럼, 정말 산다는 것이 신비한 축복이라면, 그가 존재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인종도 초월하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교수이든, 전공의든. 백인이든, 아시아인이든. 그 누구도 아무 이유 없이 무시당해서는 안되는, 생명의 가치를 가진 자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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