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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선배/존 웨슬리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Salvation by Faith)

by 다정다감 주인장 2011.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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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을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 2:8)”

 

 

 사람이 받는 모든 축복은 다 하나님의 그 부요하신 은혜, 곧 그의 사랑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격이 없음에도 그저 값없이 주시는 사랑입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는 것 모두 값없이 주시는 은총에 의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 안에 어떤 의가 있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는데 죄로 그 의가 결여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의 마음은 전적으로 부패했고 가증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 지은 인간은 죄에서 완전히 대속함을 받는 것은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로입니다. 죄인이 구원받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며 은혜입니다. “은혜로 인하여 너희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느니라.” 즉, 은혜는 구원의 원천이요, 믿음은 구원의 조건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다음의 것들을 고찰하여 봅시다.

 

 

Ⅰ.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이 믿음은 이교도의 신앙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마귀들이 예수님을 알고 인정하는 정도의 믿음과도 다릅니다. 또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이 가졌던 믿음과도 다른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란 그리스도의 복음 전체에 대한 동의일 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의 보혈에 전적으로 의뢰하며,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입니다.

 

 

Ⅱ.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은 어떤 것입니까?

 

이 믿음을 통하여 오는 구원은 현재의 구원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신자들에게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느니라”(엡 2:9)라고 한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 즉 누구나 예수 안에 있으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와 죄의 권세에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죄의 죄책(Guilt)에서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두려움에서도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벌과 진노에 대한 두려움에서의 구원입니다. 이제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무서운 주(主)가 아니라 관대한 아버지로 여기게 됩니다. 또한 이 신앙에 의하여 죄책에서 구원받은 자들은 동시에 죄의 세력으로부터도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사도요한이 요한1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Ⅲ. 이에 대한 반대에 대하여 어떻게 답변할 것입니까?

 

이상에서 설명한 것에 대해 흔히 나오는 반대(異義)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으며 구원을 얻는 다고 말하는 것은 성결과 선행을 반대하는 것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앙을 성결, 선행과 분리하여 생각한다면 그럴 수 있지만 사실 신앙(믿음)은 선행과 모든 성결을 낳게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또 이것은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보혈에만 의뢰하면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모든 규례를 지키며 하나님께서 저들이 걸어야하도록 그 안에 미리 준비해놓으신 선행을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설교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만하게 만들지 않느냐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칫하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늘 자신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다는 것도 하나님의 은총의 한 예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행위는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우리가 찬양할 것은 하나님의 풍부하신 자비뿐이요, 우리가 영광을 받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단지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장려하는 것이 될 것을 우려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저희들의 피가 저들 머리위에 머무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선은 저들을 회개케 합니다. 또 진실한 자들은 회개합니다.

다른 반대가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행함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이것은 사람을 실망시키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합니다. 사실 사람 자신의 행위나 공로나 의로 구원을 받는다면 실망뿐일 것입니다. 믿음에서 오는 의는 율법에서 오는 의를 신뢰하고 있는 동안은 주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것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교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불안한 것이 아니라 놀라운 위로입니다. 공공연한 약탈자 삭개오를 위한, 부정한 여인이었던 막달라 마리아를 위한 자비, 나는 어떤 이가 “그러면 나, 나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자비를 바랄 수 있겠구먼!”하고 말하는 것이 들리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기쁜 소식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우리의 설교의 기본으로 삼고 가장 먼저 설교해야합니다. 이 설교는 누구에게나 적용됩니다. 가난한 자, 죄인, 부한 자. 유식한 자 구분이 없습니다.

이 교리는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입니다. 이 교리야 말로 기독교의 강한 반석이며 기초입니다. 이를 부인하는 자들이 아무리 우리 눈에 그리스도인이 거의 다 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결국 멸망의 자식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선포될 때마다 반대자들은 성을 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린아이 같이 약하고 무능할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진해야만 합니다.

 

 

*붙이는 말

나는 이 설교문의 서두의 내용을 사람의 전존재가 하나님의 은총 안에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사람 안에 있는 어떠한 선행이나 의가 있다면 그것 역시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말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사랑으로 인한 것이기에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 구원에 있어서 자랑할 것이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자랑할 것은 전혀 없다. 그런데 구원받고, 남들에게 이 구원과 복음을 전하며 살고자 하는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복음의 이름을 빙자하여 나를 자랑하고자 함을 보게 되었다. 설교문을 읽으면서 내가 자랑할 것은 오직 그리스도요, 나머지 것들은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했던 바울의 고백을 심어 놓았던 내 존재 밑바닥을 다시 다듬어 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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